나의 어린이 간호 첫 번째 원칙은 '착하다고 칭찬하지 않기'. 신규 시절에는 줄곧 그 말을 썼다. 내가 아프게 했는데 견디는 어린이에게 칭찬은 해야겠는데, 내가 아는 가장 익숙한 어린이 칭찬은 '착하다'였으므로. 동네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할머니가 '아유 착하네, 애기가 예의 바르네' 하는 것처럼.
하지만 어린이를 돌보며 깨닫는 건, 그들은 절대 착하지 않다. 병원 밖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병상 위의 아이들은 착하지 않다. 그들은 멋지고 용감하다. 착하다와 용감하다는 반의어가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반 년만 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착하다는건 칭찬이 아니다. 이번에 잘 견뎠으니 다음에도 잘 하자는 유예의 약속, 어쩌면 그 약속에의 강요, 그리고 속박.
반면 용감하거나 멋진 건 다음에 그러지 않아도 된다. (용감하고 멋진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멋지게 빼입는 날이 있으면 꾀죄죄하게 집 앞 편의점만 다녀오는 날이 있는 것처럼. 오늘 으쌰으쌰했던 어린이라도 내일은 맘껏 울어도 괜찮다. 나는 단어라는 작은 틈으로라도, 아이들에게 손톱만한 자유라도 주고 싶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므로. 내가 아무리 나이팅게일의 환생이어도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므로.
다 제쳐두고, 착해서 이 모든 수모와 고난을 견디는 거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어느 밤, 격리실에서 아이와 이야기 하다가 '지금 ㅇㅇ이는 정말 용감한거야~' 라고 했다. 아이는 자기가 용감하지 않다고 했다. 왜 용감하지 않은데? 친구는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자기는 용감하지 않다고 했다. 겁이 난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겁을 낸다. 이 병동에서 아이들이 겪는 일들을 생각하면 겁을 내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 하지만 겁이 나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을 용기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를 실천하는 사람을 우리는 용감하다고 한다. 이 어린이에게 지금은 무엇일까? 병원에서도 아이들은 자란다. 아이는 자라서 스스로가 그 어떤 이보다 용감했다는 걸 알게될까.
추신. 다들 '착하다'고 할 때 그런 마음 아닌거 안다ㅠㅠ 하지만 단어는, 언어는 마음의 창이므로 기도하는 마음을 담는 것 뿐. 아기 어린이 청소년 최고!
